[칼럼]이승철 옆 그 기타리스트, 한국 록의 숨은 전설: 박창곤 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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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옆 그 기타리스트, 한국 록의 숨은 전설: 박창곤 탐구생활


먼지 쌓인 기타, 소년의 심장을 두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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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대한 여정의 시작은 때로는 아주 작은, 우연한 순간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기타리스트 박창곤의 이야기도 그러했습니다. 그의 집 장롱 위, 아무도 찾지 않아 세월의 먼지만을 친구 삼던 낡은 기타 한 대. 그것은 그저 방 한구석을 차지한 잊혀진 물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생 소년의 집에 놀러 온 친구가 그 기타를 꺼내 들었습니다. 투박한 손놀림으로 잡아낸 단 세 개의 코드. 하지만 그 단순한 화음이 만들어낸 자유로운 선율은 소년의 마음에 강렬한 불꽃을 지폈습니다. "피아노 건반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은 풍부한 감정을 이 작고 가벼운 나무 악기가 담아낼 수 있다니!" 경이로움과 함께, '저 악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열망이 소년의 가슴을 채웠습니다. 그날, 박창곤은 장롱 위 기타의 먼지를 자신의 꿈과 함께 힘껏 털어냈습니다.

운명은 또 한 번 그를 이끌었습니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잉베이 맘스틴의 현란한 기타 연주, 그리고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라는 DJ의 한마디. 그것은 단순한 소개를 넘어, 소년에게 하나의 '계시'와도 같았습니다. "아, 기타리스트가 직업이 될 수 있구나. 오직 기타 연주만으로도 세상의 정점에 설 수 있구나." 그 순간,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겁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타는 더 이상 단순한 취미가 아닌, 평생을 걸어갈 '길'이 되었습니다.

회수권과 맞바꾼 LP판, 열일곱 소년의 불타는 열정: 'Ronnie's Song'의 탄생

음악에 대한 갈증은 그를 더욱 깊은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학교 버스비로 받은 회수권을 차곡차곡 모아 LP판을 사던 시절. 한 달 가까이 왕복 두 시간의 거리를 셔츠가 땀으로 젖도록 걸어 다녀야 겨우 손에 쥘 수 있었던 검은색 원반. 그 위에서 흘러나오는 다양한 음악들은 어린 박창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자, 창작의 불씨였습니다. "나도 이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 언젠가 내 이름이 새겨진 LP판을 내 손으로 만져보고 싶다." 그 열망은 점점 더 구체적인 꿈으로 자라났습니다.

기회는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열일곱, 이미 실력을 인정받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아웃사이더스'에 막내로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성인 멤버들의 바쁜 일상 속에서 정식 녹음은 요원했지만, 그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합주실에서 몰래 녹음한 데모 테이프 하나. 그것을 '락 웨이브'라는 당대 유명 콘테스트에 보냈고, 결과는 놀랍게도 2등 입상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의 자작곡 'Ronnie's Song'은 옴니버스 앨범 '93 Rock Wave'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자신의 곡을 LP로 발매한 것입니다. "그때 제 또래 중에 LP로 음악을 낸 사람이 몇이나 됐겠어요. 정말 잊지 못할, 제 인생의 첫 번째 훈장이었죠."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그날의 벅찬 감동이 서려 있는 듯했습니다.


"I Trust You": 바다 건너 거장과의 교감, 'My Dreams'를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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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2008년, 박창곤은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집대성한 EP 앨범 'My Dreams'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이 앨범의 마스터링 작업은 전설적인 엔지니어, 故 조지 마리노가 맡았습니다. 조 새트리아니 등 세계 최정상 아티스트들의 사운드를 완성했던 거장. 당시만 해도 해외 엔지니어와의 작업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창곤은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제 음악과 유사한 스타일의 음악들을 평생 작업해 오셨기에,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제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보실 거라 생각했어요." 그는 조지 마리노에게 단 한 줄의 메시지만을 보냈습니다.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I trust you)." 그리고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의 수정 요청도 없이, 그의 음악적 비전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마스터피스가 바다를 건너 도착한 것입니다.


기타로 울부짖다: 'The Winter', 그의 가장 아픈 손가락

'My Dreams' 앨범에서 그가 유독 애착을 갖는 곡은 'The Winter'입니다. 강원도의 차가운 겨울 풍경,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날 때 느꼈던 스산함과 고독감이 이 곡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기타가 운다는 말 들어보셨어요? 기타라는 악기가 가진 특유의 마이너적인 성향이, 인간 내면의 한 서린 감정이나 울부짖음을 표현하는 데 정말 탁월한 것 같아요." 'The Winter'에는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때로는 처절하고 때로는 서글픈 감정들이 기타의 선율을 통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이 곡을 연주할 때면 그는 마치 자신의 영혼 일부를 기타 줄에 실어 보내는 듯합니다.


아빠가 되어 맞이한 'Beautiful World': 음악에도 찾아온 따스한 변화

오랫동안 그의 음악 세계를 지배했던 것은 마이너 코드의 애잔함이었습니다. 게리 무어나 잉베이 맘스틴의 명곡들처럼, 기타 연주곡은 왠지 슬퍼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크리스 임펠리테리가 편곡한 'Somewhere Over the Rainbow'처럼 밝고 희망찬 메이저 연주곡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 갈망은 아내의 첫아이 임신 소식과 함께 현실이 되었습니다. "음식이 바뀌면 체질이 바뀌듯이,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니 제 음악도 자연스럽게 밝아지더라고요." 그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Beautiful World'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새 생명에 대한 축복을 담은 이 곡의 도입부에는 실제 그의 아이가 옹알이하는 소리가 샘플링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제 아이와 함께 만든 곡인 셈이죠." 한때 무대에서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너무 많이 연주해 'Mr. Rainbow'라 불리던 것이 콤플렉스였지만, 이제 그에게는 자신의 이야기와 사랑이 담긴 'Beautiful World'이 있기에 더 이상 남의 노래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4만 관객의 함성, 그리고 선글라스 뒤의 고독: 'Beethoven Symphony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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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데뷔 25주년 기념 콘서트가 열렸던 서울 올림픽 공원 주경기장. 그날의 무대는 박창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4만 명이 넘는 관객이 내뿜는 열기는 마치 지진과도 같았습니다. 러닝타임 2시간의 공연 중, 그에게 가장 큰 부담감과 긴장감을 안겨준 순간은 바로 'Beethoven Symphony (Rock)'의 솔로 파트였습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오직 그에게만 집중되는 시간. 관객들은 가수도, 무대도,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그의 손끝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선글라스를 항상 끼는 이유는 연주할 때 눈을 자주 감기 때문이에요. 집중도도 훨씬 높아지고, 평정심을 가질 수 있죠." 그는 그 순간에도 어김없이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뜨면 거대한 관중의 물결과 함성이 그를 덮칠 것만 같았습니다. 오직 기타와 자신만이 존재하는 무아의 경지. 그렇게 그의 전설적인 솔로는 완성되었고, 공연이 끝났을 때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것은 안도의 한숨이었습니다.


무대 뒤 아찔했던 순간들: 기타리스트의 숙명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언제나 아찔한 순간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이승철과의 첫 공연, 첫 곡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의 기타 솔로가 시작되는 순간,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져 버린 기타줄. "아, 이제 이승철 씨와는 더는 볼 일이 없겠구나…" 절망적인 생각이 스쳤지만, 이승철은 그 일을 웃어넘겼습니다. 올림픽 경기장 무대에서는 멤버와 동선이 겹쳐 좁은 난간에서 떨어지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자신이 떨어진 줄도 몰랐지만, 놀랍게도 정신없는 와중에도 기타 연주를 계속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앰뷸런스에 실려갔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가 뼈가 튼튼한가 봐요"라며 웃지만, 그러한 순간들이야말로 음악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헌신을 보여주는 일화들입니다.


LP와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하루 10시간의 담금질: 거장의 탄생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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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준 스승은 누구였을까요? 의외로 그는 'LP 음반'과 '비디오테이프'를 꼽습니다. 학창 시절 회수권을 아껴가며 샀던 LP판들, 그리고 조지 린치, 폴 길버트, 잉베이 맘스틴 등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들의 연주가 담긴 비디오테이프는 그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비디오테이프가 다 늘어날 때까지 보고 또 보며 그들의 연주를 카피했던 시간들. 그리고 "하루를 쉬면 이틀을 빼앗긴다"는 절박함으로 하루 10시간씩, 3년간 기타 연습에만 매진했던 독한 시간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기타에 미쳐 살았던 젊은 날. 그는 "당시에는 젊어서 버틴 것 같기도 하다"며 겸손해하지만, 그러한 극한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기타리스트 박창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윙 곤'과 시그니처 기타: 악기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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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에게 악기는 분신과도 같습니다. 스윙 기타에서 출시된 그의 시그니처 모델 '스윙 곤(Swing Gohn)'은 국내 시그니처 기타 중 가장 많이 팔린 모델 중 하나로 기록될 만큼 그의 명성을 입증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악기를 소중히 다루거나 애지중지하는 편은 아니에요. 악기에 너무 신경 쓰다 보면 연주보다 스펙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화려한 스펙의 악기가 아니라, 그 악기를 통해 소리를 만들어내는 '자신의 손과 기술'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여러 대의 기타를 소유하는 이유는, 각 곡의 분위기와 표현하고자 하는 뉘앙스에 가장 적합한 소리를 찾기 위함입니다. 최근에는 직접 인도네시아 기타 생산 공장을 방문해 품질을 검증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커스텀 시그니처 기타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팬들에게 또 다른 설렘을 안겨줍니다.


기타리스트의 삶, 그 무게와 책임감

대한민국에서 '기타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는 때때로 "짐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좀 더 잘 돼야 후배들도 바라볼 언덕이 생기고 희망이 생길 테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 학교에서 아이들이 아버지의 직업란에 '기타리스트'라고 적었을 때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승철 밴드에요"라는 말에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는 현실.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세요?", "한 달 수입은 얼마나 돼요?" 같은 질문들이 먼저 나오는 것이 때로는 슬프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화려한 무대 뒤 예인(藝人)의 고독과 현실적인 고민이 엿보입니다.


만약 다른 삶을 살았다면? 끝나지 않은 꿈, 그리고 음악으로 나누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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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기타리스트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는 의외로 '운동선수'를 꿈꿨다고 말합니다.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면 세계 최고인 줄 알았거든요. 중학교 때 라디오에서 잉베이 맘스틴을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라고 소개하는 걸 못 들었다면, 아마 올림픽 금메달이 제 꿈이었을 거예요."

그에게 예술이란 "모든 것이 무아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이루어지는 완성품"이며, 아티스트란 "예술을 갈망하고 이를 향해 도전하는 모든 사람"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때로는 잠결에 떠오르는 악상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미발매 곡들의 발매, 이승철과의 투어,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목소리로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소망까지. 그의 음악 시계는 멈추지 않습니다.

"음악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그리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사람들도 좋아하니까, 계속해서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기쁨을 주고,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을 많은 분들에게 들려드리는 것이 제 몫이죠."

기타리스트 박창곤. 그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로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장롱 위 먼지 쌓인 기타에서 시작된 그의 꿈은, 이제 4만 관객의 함성으로,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울리는 불멸의 멜로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의 기타는 오늘도, 우리에게 가장 솔직하고 뜨거운 이야기를 건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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