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타 한 대가 210억 원에 팔렸다 - 6주 전, 뉴욕에서 생긴 일

그랩더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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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2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
한 대의 기타가 21분 만에 낙찰됐다. 낙찰가는 1,455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10억 원.
구매자는 온라인 익명 입찰자였고, 경매장 안의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이 기타의 이름은 '블랙 스트랫(Black Strat)'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비드 길모어가 1970년부터 1983년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바로 그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다.
기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지만, 이 금액 앞에서는 누구나 잠깐 멈추게 된다.
도대체 기타 한 대가, 왜 210억 원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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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이미 한 번 팔려던 기타였다
블랙 스트랫은 사실 이번이 처음 경매에 나온 게 아니었다.
2019년, 길모어 본인이 자신의 기타 125대를 한꺼번에 경매에 내놓았다.
기후 변화 대응 자선단체에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때도 블랙 스트랫은 최고가를 기록했다 - 397만 5천 달러, 당신 역대 최고가 기타 기록이었다.
그 기타를 산 사람이 바로 짐 어세이(Jim Irsay). 미식축구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구단주이자, 록 음악 역사에 남을 악기들을 평생 모아온 수집가였다.
그리고 7년 뒤인 2026년 3월, 어세이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컬렉션 전체가 다시 경매에 올랐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블랙 스트랫은 2019년 낙찰가의 3.7배로 다시 팔렸다. 210억 원. 단 21분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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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뉴욕에서 벌어진 일
그런데 블랙 스트랫만 기록을 깬 게 아니었다.
2026년 3월 12일 단 하루의 경매에서, 역대 최고가 기타 상위 10위 안에 드는 기타가 5대나 한꺼번에 낙찰됐다.

그레이트풀 데드의 제리 가르시아가 직접 의뢰해서 제작에 6년이 걸린 커스텀 기타 '타이거(Tiger)' - 1,156만 달러(약 167억 원).

커트 코베인이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 뮤직비디오에서 연주하던 펜더 머스탱 - 690만 7천 달러(약 100억 원).

에릭 클랜튼의 1964년 깁슨 SG '더 풀(The Fool)', 클랩튼의 1939년 마틴 000-42 어쿠스틱, 조지 해리슨의 깁슨 SG까지.

경매 총액은 하루에만 8,490만 달러. 4일간 컬렉션 전체 낙찰가는 9,450만 달러(약 1,370억 원)에 달했다.
역사상 가장 큰 음악 기념품 경매로 기록됐다.
참고로, 그날 밤 기타만 팔린 게 아니었다. 링고 스타가 에드 설리변 쇼에서 쓴 드럼 헤드가 288만 달러, 밥 딜런의 자필 가사지가 251만 달러, 그리고 누군가는 안장(saddle) 하나에 150만 달러 이상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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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트랫은 어떤 기타인가
1970년, 데이비드 길모어는 뉴욕 매니스 뮤직이라는 악기 상점에서 한 대의 중고 스트라토캐스터를 집어 들었다.
1969년산, 특별할 것 없는 표준 모델이었다.
그 기타가 이후 13년간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 위시 유 워 히어(Wish You Were Here), 더 월(The Wall), 애니멀스(Animals)
- 핑크 플로이드의 시대를 대표하는 앨범들이 모두 이 기타에서 나왔다.
길모어 특유의 서정적이고 울림이 긴 톤, 그 소리의 중심에는 항상 이 블랙 스트랫이 있었다.
기타 자체가 특별한 희귀 모델이어서가 아니었다. 이 기타를 특별하게 만든 건 오직 그 위에 쌓인 시간과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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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역대 가장 비싼 기타 순위는?
이번 경매로 순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현재 기준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위 - 데이비드 길모어, 블랙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1,455만 달러 (2026년 3월 Jim Irsay 컬렉션 경매)

2위 - 제리 가르시아, 타이거 커스텀 기타, 1,156만 달러 (2026년 3월 Jim Irsay 컬렉션 경매)

3위 - 커트 코베인,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 펜더 머스탱 690만 7천 달러 (2026년 3월 Jim Irsay 컬렉션 경매)

4위 - 커트 코베인, MTV 언플러그드 마틴 D-18E 601만 달러 (202년 줄리안스 경매)

5위 - 에릭 클랩튼, MTV 언플러그드 마틴 000-42 410만 1천 달러 (2026년 3월 Jim Irsay 컬렉션 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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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에 왜 이 돈을 쓰는 걸까
이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미술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작품이 수백억 원에 거래됐다. 그런데 기타는 조금 다르다.
명화 앞에선 누구나 "비싸겠지"하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기타 앞에서는 잠깐 멈추게 된다.
이 기타들이 비싼 이유는 악기 자체의 제작 원가나 희귀성과 큰 관계가 없다.
블랙 스트랫은 1969년에 생산된 표준 모델이다.
이 기타를 거쳐간 음악, 그 음악을 들으며 살아온 수백만 명의 기억, 그 기억에 만든 감정의 무게 - 그게 가격이 된다.
어세이가 이 컬렉션을 모으는 데 쏟은 돈은 수십 년에 걸쳐 수억 달러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그에게 이 기타들은 투자 자산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살아있는 음악의 역사 그 자체였다.
2019년 블랙 스트랫을 처음 낙찰받았을 때, 어세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 기타들을 지켜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그는 그 책임을 다했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기타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다. 210억 원을 안고서.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악기를 한 번 다르게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떤 기타도, 처음부터 전설이었던 적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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